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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결투와 개싸움"

야성 2016. 3. 8. 13:55

미국 대선은 '결투'이고 한국 총선은 '개싸움'인 이유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결투'는 문화의 자양분

결과에 승복할줄 모르는 정치인들이 배워야할 것

   1832530일 이른 새벽, 파리 13구역 글라시에 연못 근처에서 총성이 울렸다. 한 사람이 병원으로 옮겨졌고, 지켜보는 동생에게 울지 마라! 스무 살 나이에 죽으려면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짜내야 한단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헌데

   결투 전날 밤에 유서와 함께 남긴 그의 마지막 편지가 훗날 수학의 역사를 바꾼다. 그는 5차 방정식의 일반해가 없다는 사실, 즉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물론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어 100년 뒤에나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된다. 그는 천재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였다.

 

EBS 다큐 '수학', 갈루아의 권총 결투 재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1837210일 오후 245.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숨을 거둔다. 이틀 전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부인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염문설이 나돌던 조르주 단테스와 결투를 치렀었다. 상대가 러시아로 망명 온 프랑스군 장교였으니 이미 죽음은 각오한 일이겠다.

 

   푸시킨의 업적은 모국어인 러시아어로 현대 러시아문학의 전통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러시아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썼었다. 조선 선비들이 한문을 사용했던 것처럼. 어린 시절 하인들로부터 러시아어를 배운 그는 러시아어를 시어로 사용했는데,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로 러시아문학을 푸시킨 이전과 이후로 나누게 할 정도였다. 만약 푸시킨이 38세라는 나이에 죽지 않았더라면 세계문학사는 훨씬 더 풍요로웠을 것이다.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의 중편소설을 영화화 한 '결투'의 장면.

결투(duel, 決鬪)’라는 문화 자양분

 

   대부분의 문화가 그렇듯 결투의 기원도 분명할 리는 없다. 다만 1세기경의 게르만 민족에 개인간의 분쟁을 격투로 해결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결투의 원형이 아닐까 유추된다. 그 후 결투는 유럽 전역에 퍼졌고, 1011세기 프랑스에서 특히 성행하였다가 그 폐단이 지나쳐 15세기에는 금지되었다. 근대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가 자존심 강한 프랑스의 상류사회와 문인·저널리스트·정치가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결투에 사용된 무기는 칼이나 권총이었는데, 결투의 도전은 한쪽 장갑을 상대방에게 던지고, 그것을 상대방이 주우면 승낙이 되었다. 결투신청서를 보내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개척시대에 종종 권총 결투가 벌어졌다. 18811026일 수요일 오후 3시경 30초 동안 벌어진 무법자 카우보이들과 법집행관들 사이에 벌어진 ‘O.K. 목장의 결투는 서부 개척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다.

 

만약

   이 결투의 풍습이 없었다면 서구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간사회에서 시비가 불분명한 갈등의 상당 부분을 결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였으니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겠다. 결투가 없었으면 서양정신의 핵심인 기사도와 페어플레이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스포츠에서의 단판 승부, 선후를 결정하는 동전던지기도 그런 문화적 전통에서 나온 것이리라.

 

   어쨌든 인류사, 특히 서양사에서 결투가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하고 많은 천재들이 이 결투 때문에 중도에 삶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대신 그들의 죽음은 후세인들에게 풍부한 예술적 소재를 제공했으니 그 또한 공적이라면 공적이겠다. 특히 소설, 연극, 영화, 게임에서 결투란 없어서는 안 될 양념, 결투 없는 서부극은 말 그대로 앙꼬 없는 찐빵과 다름없다.

 

   서부영화의 1인자 하면 역마차》 《황야의 결투》 《아파치 요새등을 만든 존 포드 감독을 꼽는다. 그 때문인지 결투란 용어는 왠지 수입품 냄새가 진하다. 서구와는 달리 동양에선 역사상 특별하게 기억나는 결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동양인에겐 자객, 암살, 자결, 자해라는 용어가 익숙하다. 사기》 《손자병법에도 결투란 없다. 유교적 관점에서도 결투는 어리석은 행위에 속한다. 7,80년대 들어 무협영화가 그토록 많이 만들어졌어도 우리에게 결투는 여전히 낯설다.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

영화 속의 결투

 

요진보(用心棒)》 《라쇼몬(羅生門)》 《7인의 사무라이(七人)》 《쓰바키 산주로(椿三十郞)》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

   일본이 낳은 불세출의 명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가 서부극의 원형을 빌려 만든 시대극들이다. 존 포드, 프랭크 카프라, 하워드 호크스의 영향을 받은 그는 서부극을 일본적 미학으로 완성하였다. 그는 또한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커스, 프랜시스 코폴라, 우디 앨런, 뤽 베송 등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감독으로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7인의 사무라이(七人)는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를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다시 본토로 역수출 돼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을 낳는다. 요진보(用心棒)역시 세르조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등 수많은 아류를 낳아 마카로니웨스턴의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었다.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의 인물은 조지 루커스의 스타워즈에 미래의 세 인물로 치환됐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우상은 구로사와 아키라였다. 스타워즈의 기본 플롯은 구로사와의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악당의 투구와 복식, 광선검은 모두 일본 무사들의 것에서 따온 것이다. 스타워즈의 오비완 케노비는 감베이의 캐릭터를 카피한 것이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의 코멘터리에서 요다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은 감베이가 습관적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에서 따온 오마주였다고 밝힐 정도였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짬뽕영화 사무라이 웨스턴

 

어차피 영화란 

   ‘구라임을 약속하고 들어가는 것이기에 말도 안 되는부분은 영화니까!’하고 넘겨야만 한다.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총잡이들의 결투장면이다. 정통적인 결투는 20보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마주보고 쏜다. 더 먼 거리라면 서로를 향해 걸어가면서 명중시킬 자신 있을 때 쏘기도 한다. 때로는 중간에서 입회인이 신호를 보내면 동시에 쏘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든 피하지 않고 신사답게 당당하게 선 자세에서 쏘아야 한다. 자칫 비겁했다간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되고 만다.

 

   한데 황야의 무법자이후 서부극을 보면 대부분의 결투 장면에서 서로를 한참 째려보다가 드디어 악당이 총을 뽑으면 그제야 뒤질세라 주인공이 총을 뽑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일본 스모(相撲)의 탐색전처럼. 그만큼 주인공의 사격 솜씨가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지만 기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억지다.

 

   총은 명중시킬 자신이 있으면 먼저 뽑는 자가 이길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허나 방어와 피함이 가능한 칼의 결투라면 사정이 다르다. 비슷한 수준인데다 상대가 준비하고 있다면 먼저 움직이는 자가 유리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오히려 빈틈을 보여 불리한 경우가 많다. 해서 상대가 먼저 움직이길 기다리며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헌데 서부극에서 결투가 왜 그렇게 변했을까? 바로 구로사와의 사무라이 웨스턴의 영향 때문이다.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처럼 칼싸움의 긴장감을 총싸움에 도입하려다 보니 그런 어이없는 연출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억지는 스타워즈에서도 그대로 재현 되는데, 바로 광선검이다. 은하를 이웃동네처럼 왔다 갔다 하는 시대에 광선총이 아닌 광선검이라니! 그러니까 제다이 기사들은 은하시대로 날아간 사무라이? 이 역시 사무라이 액션이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예술은 이고 문화는 구라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무협에선 그 같이 긴장감 넘치는 결투를 찾아보기 어렵다. 바둑 두듯 고수는 하수에게 몇 수를 양보하고, 연장자는 젊은이의 도전을 받으면 몇 수 양보할 테니 먼저 공격하라고 허세를 떨어야 한다. 이때 후배가 곧이곧대로 바로 공격했다간 돼먹지 못한 놈이 되고 만다. 해서 양보 받은 만큼 허공에다 허수로 날린 다음 진짜 공격으로 들어가야 한다. 목숨을 건 결투라기보다는 화기애애한 아크로바틱 무술시합 같아 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중국은 역대 왕조에 따라 유교 도교 불교의 경쟁과 부침이 심했다. 하여 서로 더 고매한 척 하기 위해 뻥을 치는데 이게 완전 장난이다. 불교가 들어와 ()’으로 히트를 치자. 도교가 뒤질세라 ()’()’로 뻥을 친다. 그러자 ()’()’을 내걸었던 유교도 가만있을 수 없는 일, 하여 고민 끝에 들고 나온 게 ()’()’. 하나같이 증명이 안 되는 그럴싸한 구라.

 

   이 3교 대전에서 먼저 유교가 밀려난다. 그래도 공자는 주희(朱熹)라는 제자 덕분에 겨우 조선에서 제삿밥을 얻어먹고 5백년을 더 연명한다. 대신 불교와 도교는 송···청을 거치면서 엎치락뒤치락을 계속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명대 오승은(吳承恩)이 쓴 서유기(西遊記). 제 아무리 도술에 능한 손오공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 하여 고분고분 삼장법사의 종자가 되어 인도까지 잘 모시고 다녀온다는 이바구를 통해 원대에 번성했던 도교를 깔아뭉갠 것이다.

 

   도교의 신들이 영생불사 하듯, 동서양의 결투맨들 역시 시공을 초월한다. 람보는 월남에서 돌아온 장고, 터미네이터는 미래에서 온 무법자다. 닌자거북이》 《드래곤볼》 《드라큐라》 《해리포터》 《킹스맨》…, 미련곰탱이 팬더도 태평양을 건너가더니 쿵푸의 절대고수가 되어 돌아왔다. 이렇게 문화란 뻥을 통해 변신을 거듭한다. 그런 걸 현대인들은 상상력이라 하고 문화 창조라 부른다. 미래의 먹거리라며 자나깨나 뻥칠 궁리를 한다.

 

   문화란 내것 네것이 따로 없다. 향유하는 자의 것이다. 한데 우리의 홍길동은? 용가리》 《태권브이? 어째서 아직도 어린이 장난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는 분명 유교적 사고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칼도 총도 없는 선비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세치 혀 싸움뿐이다. 원래 결투란 승부가 나지 않는 입씨름에 넌더리가 나 선택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유학은 문화를 창조하는 학문이 아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변치 않는 민족이 500년 동안 한 일이라곤 그저 백골이 진토가 될때까지 오르지 아니 되옵니다!”로 용기와 절개를 증명해낸 것뿐이다. 이런 일편단심 똥고집 선비의 나라에서 무슨 창의니 혁신을 기대하랴! 하여 군사정권 시절 인류공영에 이바지운운했을 때 사람들은 괜히 뻥치는 줄 알고 속으론 우리가 왜?’라며 거부했던 것이다.

 

결투할 줄 모르는 한국 정치인들!

   어느 나라든 정치의 품격도 영화나 드라마, 스포츠의 품격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대선게임이 점입가경이다. 홀연히 나타난 정파도 사파도 아닌 무법자의 종횡무진에 전전긍긍하는 주류파 건맨들, 종합격투기를 방불케 하는 화끈한 난타전. 전 세계인들이 신이 났다. 그에 비해 한국의 총선전은?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저들끼리 붙들고 바닥에 나뒹굴어 진즉 왕짜증이다.

 

   어차피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나면 쪼개질 게 빤한 여당은 벌써 친박, 비박으로 편 갈라 멱살잡이에 여념이 없다. 또 지난 날 백신을 들고 홀연히 나타났던 한국의 무법자는 내친 김에 호랑이를 잡겠다고 호랑이굴에 들어가더니 고작 여우 새끼 몇 마리 훔쳐 들고 철수해 따로 구멍가게를 차렸다. 다들 하나같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이대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기 때문!”이란다. 누구도 자신의 미래가 없어서!”라고 하지 않는다. 제대로 뻥도 못 치면서 솔직하지도 못하다.

 

여의도 상투잡이

   개봉박두! 예고편에 벌써 저걸 영화라고 만들었나?” 소리가 나온다. 결투 대신 암투, 중상모략, 협잡, 말장난, 침뱉기, 뒷다리걸기만 난무하니 식상할 수밖에! 판정불복에 두고 보자!”는 씩씩거림이 연신 터져 나온다. 안타깝게도 우리 문화에는 결투가 없다. 당연히 페어플레이도 없다. 한국 정치가 긴장감도 통쾌함도 없이 도무지 답답하기만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마도 여의도 선량들은 젊은 시절 공부만 하다가 서부영화나 무협영화를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해서 감히 권하는데 당장 국회에서 영화제를 열어 이번 총선 출마희망자들에게 결투영화들을 실컷 보여줬으면 싶다. 비록 이전투구(泥田鬪狗) 막싸움이지만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매너라도 배울 수 있을지! 작가나 영화인들도 시류에 맞춰 국민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호쾌한 작품들을 좀 내놓았으면 좋겠다.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출처 : 파독광부간호사
글쓴이 : sgle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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